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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회고

나고야 교환학생은 지금까지 인생을 살면서 제일 행복한 6개월이었습니다. 그래서 ‘흥진비래’는 옳음을 증명한 걸까요, 그만큼 힘든 한해였습니다. 그리움에 발목이 묶여 나고야에 남겨진 추억이 퇴색되기 전에 한순간이라도 더 즐기고 싶어 단기 아르바이트를 하며 한 학기를 보냈고, 과거가 아닌 현재를 살아가기 위해 복학을 하고 무리하게 설정한 스케줄로 인해 학기 마무리 시기에 지쳐버려 무기력하게 한 학기를 마치게 되었습니다. 조용히 며칠 남지 않은 한 해를 보내며 재충전의 시간을 가진 후 내년부터는 지치지 않도록 휴식을 취하며 꾸준히 노력하려 합니다. 흥진비래의 시기를 견뎠으니 고진감래의 시기가 반드시 올 거라 생각합니다.

23-1 휴학 - 추억팔이, JLPT 점수 갱신, JPT 취득

2월 28일, 나고야 교환학생 생활이 완전히 끝나게 되었다. 2022년 9월 21일 나고야에 입국했을 때 비어있는 수납장과 중간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캐리어를 보며 ‘떠날 때도 이런 상태가 되겠지만 많은 행복과 추억이 생기겠지’라는 생각을 했는데 예상대로 그렇게 되었다.

원래 휴학의 목적이었던 일본어 심화 공부보다 ‘나고야에 며칠이라도 더 있고 싶다’라는 바람이 더 커졌다. 일본 친구들도 더 보고 싶었고 골목과 시내 거리를 정처 없이 걷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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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기 호텔 알바를 하며 돈을 모았다. 시급은 12000원에서 13200원이었으며 약 180만원정도 모아 2번의 여행을 갔다 왔다. 나고야로 떠나 친구들을 만나며 하루하루 지내는 여행은 행복했지만 이런 행복은 지속될 수 없는 것을 점점 깨닫게 해주었다. 20대라는 잠재 가치가 높은 시간을 급처해 탕진하는 삶을 반복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너져버린 상반기 목표와 ‘시간의 7할은 미래의 나의 발전을 위해, 3할은 부지런하게 산 현재의 나를 위해 사용한다’는 룰을 다시 살려야 했다. 남은 시간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며 사람인을 찾아보다 일본계 기업 인턴십을 보게 되었고 ‘인턴십, JLPT 점수 갱신, JPT 취득’이 23년 상반기의 목표가 되었다.

JLPT 점수 갱신도 JPT 취득도 성공적으로 마무리 되었다. JLPT는 146점(상위 7.2%)으로 예전 성적에 비해 약 20점 향상되었고 JPT는 895점의 결과로 느슨하게 지내며 일시적인 행복에 안주했다는 죄책감을 덜 수 있었다. 5점 부족해 900점대가 되지 못한 점은 아쉽지만 Proficiency Scale에서 880점 이상이 제일 높은 Scale이었기 때문에 재수험은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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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방학 - 일본계 기업 인턴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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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심심할 때 사람인 같은 구인 사이트를 둘러보는데 일본계 기업 인턴십 프로그램을 보게 되었다. 일본에 관심이 있기도 하고 인턴십 활동이 필요했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지원하게 되었다.

면접은 면담이라 해도 무관할 정도로 압박 면접은 없었고 편한 분위기로 진행되었다. 어느 정도의 일본어/영어 실력을 갖추고 있는지 확인했고 판교에 출근이 가능한지 등에 관해 물어보았다. 대체로 일본 취업에 대한 관심, 인턴십에 대한 열정이 어느 정도 있는지를 확인하는 게 주목적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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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한 달간 르네사스 디자인코리아에서 Matter 프로토콜을 사용해 자사 EVK에 Window Covering(블라인드) Sample Application을 개발했다. C/C++로 이루어진 기존 코드들을 분석해 어플리케이션 가동 → 페어링 → 기능 작동 흐름과 클래스를 이해하였다. 파악한 클래스/메소드와 Matter 공식 문서를 기반으로 기존 코드를 수정하며 성공적으로 어플리케이션을 제작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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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시간이었지만 Matter의 기본 지식과 실제 업무 흐름을 알 수 있었고 직원분들을 통해 기업을 고르는 기준에 대한 조언을 받을 수 있었다. 이후 자체 인턴십 프로그램이 있다면 참여하고 싶다고 말할 정도로 좋은분들이 많은 곳이었다.

4학년 1학기 복학 - 교환학생 업보 청산 학기

원래 교환학생 기간 중 데이터베이스, 운영체제와 같은 여러 전공과목을 수강할 계획이었지만 파견 학기에는 개강하지 않아 비교적 적은 전공 학점을 취득하였다. 다른 과 졸업학점에 비해 약 10학점 이상 많은 컴퓨터공학과에서 한 학기 동안 6학점의 전공 학점을 취득한다는 건 언젠가 청산해야 할 업보가 생긴다는 것을 의미하였고, 그 업보를 청산할 시기가 4학년 1학기였다.

21학점은 숫자만으로 힘든 학기라는 것을 암시하는데 여기에 한술 더 떠서 7전공이라는 사실이 상상 이상으로 험난한 학기일 것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그렇지만 절대로 이렇게 된 원인인 교환학생을 후회하지 않는다. 반대로 이렇게까지라도 가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예상대로 쉽지 않은 한 학기였다. 3개의 프로젝트를 동시에 진행하였고 알고리즘, 운영체제, 데이터베이스 3가지 전공필수 과목을 수강하는 것 만으로 부담감이 컸다. 그런데 힘들 때 더 다그치는걸 좋아하고 방학 때 일본 여행을 가고 싶어 교내 대회를 참여하게 되었다.

교내 대회 참여

학기중 돈을 벌어서 겨울 방학에 일본 여행을 가고싶었다. 대학생이라는 신분으로 가능한 좋은 방법은 공모전 수상이었다. 전략적으로 생각하였을 때 공모전 수상을 하게 될 경우 소프트웨어중심대학의 마일리지 장학금까지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실패해도 경험이 생기고, 수상하면 스펙+상금이니 참여하면 본전이라 생각하였다.

뤼튼 프롬프트 대회 - 대상

이번 학기 처음 참여한 대회였다. ChatGPT에 역할을 부여하는 프롬프트와 ChatGPT 기반 서비스인 뤼튼의 툴 제작 서비스를 사용해 재미있는 툴을 만드는 대회였다. 2인 1조라 했지만 급하게 참여하며 단독으로 참여하게 되었지만, 당일 나와 같은 사람이 있어 즉석에서 팀 빌딩을 하게 되었다.

ChatGPT의 기본적 개념인 LLM(Large Language Model), LLM의 문제점, 이를 해결하기 위한 프롬프트 작성 요령, 여러 예시를 주어 질문에 대한 답이 정확하게 나오도록 하는 Few-shot 기법 등을 알게 되었다. 수상이 아니더라도 이번 학기 진행한 캡스톤디자인 프로젝트에 도움이 되는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ChatGPT 기반 문서 검색 시스템을 만드는데 필요한게 프롬프트 작성이었다)

상호평가로 진행되는 대회의 평가 기준 중 ‘재미있는가?‘를 보자마자 ‘n행시 만들기’라는 주제가 떠오르게 되었다. 빠르게 팀원과 프롬프트를 작성하며 테스트를 마쳤고 PPT를 ‘재미’ 하나에 올인하여 제작하였다. ‘카카오톡으로 잘못 보낸 톡 하나, 상대방은 칼같이 읽어버렸습니다. 당신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로 시작해 참여 인원 모두가 웃도록 노렸고 성공적이었다. 발표 중간에는 대회 참여하러 온 건지 웃기려 온 건지 헷갈릴 정도로 즐겨서 후반에는 나도 조금씩 웃었다.

긴장되는 수상 발표였다. 장려상과 우수, 최우수상 팀을 순차로 발표했는데 내 팀명은 불리지 못했다. 팀원이 아쉬워했던 순간, 대상 발표에 내 팀명이 불리게 되었다. 이번 학기 첫 대회인데 제일 높은 상을 받아서 기뻤다. 평가 기준 공략을 잘 하면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생각한다. ChatGPT에 생소했지만 이번 대회를 통해 친숙하게 되어서 좋은 경험이었다.

23-1-prompthon.jpeg 팀원이 놀라면서 등짝 치는데 아프더라… 많이 놀랐나보다.

창업 경진대회 - 우수상

두 번째로 창업 아이디어를 통해 IR 피칭을 하는 대회에 참가하였다. 3~4인 1조였지만 4명이 대상을 받을 때보다 혼자 장려상을 받았을 때 상금이 더 많았기 때문에 혼자 참여하게 되었다.

아이디어 기술서를 통해 선정된 10팀이 IR 피칭 PPT와 포스터를 준비하는 구조였다. 3~4인으로 팀을 꾸리는 걸 추천할 때부터 쉽지 않을 것이라 예상했지만 더욱 바쁜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7전공(3프로젝트)의 과제와 강의를 모두 마치고 나서야 이 대회를 준비할 수 있었다. 새벽 4시까지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PPT 자료를 만들었다. 잠깐 자고 아침 9시 반에 멘토링을 받으며 IR 자료를 수정하고 생전 처음 포스터를 작성했다. 이런 나날을 반복했다. (이 자리를 빌려 멘토분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발표 당일 첫 번째 순서라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처음에는 ‘내가 왜 첫번째야ㅠㅠ 너무 긴장되는데..’라는 푸념을 다른 참여팀의 발표를 보며 다행이었다고 느꼈다. 시장의 문제점, 솔루션, 경쟁사 분석과 예상 수익 모델을 통해 가능성을 ‘예상’으로 어필했는데 다른 팀의 경우 ‘성과’를 통해 미래의 가치를 어필했다. 게다가 발표 시점에서 이미 아이디어가 실현되어 1000만원의 매출을 발생시켰고 시장의 규모를 SOM(수익시장), SAM(유효시장), TAM(전체시장)으로 체계적으로 분석해 미래의 비즈니스 계획을 평가위원에게 전달했다. 이런 쟁쟁한 팀 가운데 운이 좋게도 우수상을 받게 되었다. 운칠기삼이 이런 건가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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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로워가 아닌 리더로서, 한 아이디어를 실현하기 위해 많은 단계가 필요하다는 점을 알 수 있는 좋은 경험이었다. 좋은 아이디어임을 어필하기 위한 PPT 구조부터 아이디어에 대한 의심/공격을 넘기기 위한 능력, 이를 위해 아이디어와 관련된 기반 지식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전문성까지, 짧은 시간 준비하며 쉽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누군가 팔로워형인지 리더형인지 물어보았을 때 항상 팔로워형이라고 말했지만 한편으로 ‘리더를 맡아본 적이 없어서 그저 팔로워형이라고 하는 게 아닐까?‘하는 의문이 있었다. 이 의문을 풀 수 있었다는 점에서 어떤 상을 받아도 후회가 없는 대회였다. 리더의 아이디어를 실현하기 위해 서포트하는 행동으로 성취감을 느끼는 영락없는 ‘팔로워’형임을 깨닫게 되었다.

이렇게 한 학기 동안 학업과 병행하며 활동하는 건 끝이라 생각하였다. 근데 아니었다.

일본 취업 설명회 참여 - 에이전시 미팅

경희톡으로 일본 취업 설명회가 교내에서 진행된다는 알림을 받게 되었다. 일본 취업에 관심이 많아 바로 참여했다. ‘에이전시를 통해 양질의 일본 기업에 취업할 수 있을까?‘라는 의심이 있었는데 참여 기업 리스트와 3곳 이상의 기업에 인터뷰 제안을 받을 경우 숙박비 및 항공료 전액 지원이라는 점을 듣고 이 정도의 투자를 할 수 있는 기업이라면 다른 방법보다는 손쉽게 나쁘지 않은 기업에 취업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였다.

설명회가 끝나고 에이전시에 회원가입을 하고 기본적인 인적정보를 작성하자 간단한 인터뷰를 진행하고 싶다고 메일이 왔다. 일정을 정하고 30분간 정해진 질문에 답하는 방식이었다. 현재 어떤 프로젝트를 경험했는지, 어느 정도의 연봉을 원하며 어떤 직군을 희망하는지 등 이후 소개할 기업과 관련해 필요한 질문에 답을 했다.

이후 포트폴리오, 일본에서 일하고 싶은 이유, 자기 PR 영상을 제출해달라는 요청을 받았으나 제출 기한이 기말고사 기간과 정확히 겹쳐 양해를 구하고 연기를 했다. 해당 서류를 준비하며 다시 한번 일본에서 살기 위한 이유를 상기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서류를 제출하는 것으로 4-1학기가 끝났다.

마무리 / 개선

‘잘’하는건 기대할 수 없을 정도로 바쁜 학기였다. 7전공과 3개의 팀플과 동시에 팀으로 진행하는 대회를 단독으로 준비하는 건 너무나 벅찼다. 스트레스가 과도하게 쌓여 번아웃 증상이 나타났다. 12월 초부터 식습관이 무너졌으며 기억력이 저하되었고 감정이 불안정해져 강의 도중, 밥을 먹다가 아무 이유 없이 눈물이 나려 해서 당황하는 일이 생겼다. 힘든 걸 인식하지 못하도록 일을 더 벌이는 성격이 문제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현재 신분, 조직 안에서 성과를 만들어내는 게 이후 사회의 일원이 되었을 때 도태되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지치지 않기 위한 개선 방안으로 일을 줄이기보다는 의식적으로 휴식 시간을 가지는 방법을 가지려 한다. 불필요하게 쇼츠와 릴스를 보며 허비하는 시간을 휴식 시간으로 전환하고 일을 할 때는 일에만 집중해서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도록 노력하려 한다.

내년은 겨울방학 동안 기업 인터뷰 준비와 일본 여행을 시작으로 사회에 나가기 위한 준비를 하려 한다. 성공적인 마무리로 내년의 회고 내용이 긍정적으로 채워지길 기대한다.